놀이 안에서 모든 정의는 길을 잃는다

Written by JoonPapa on . Posted in 놀이, 창의성

즉흥 연주, 작곡, 글쓰기, 그림 그리기, 연극, 발명 등 모든 창조적 행동은 놀이의 다른 형태다. 놀이는 창조성의 시작점이자 삶의 근본 형태다. 놀이가 없다면 학습이나 불가능하다. 놀이는 독창적인 예술이 꽃피도록 하는 뿌리이며 예술가가 새로운 기법을 만들고 익히기 위한 원재료이다. 새로운 기법을 만들고 익히기 위한 원재료다. 새로운 기법은 도구를 가지고 시도하고 그 한계를 점검하는 식의 반복 놀이를 통해서만 얻어지기 때문이다.
창조적인 작업, 즉 선택된 재료를 바탕으로 한 자유 탐색 작업이 놀이다. 창조적인 마음은 좋아하는 대상을 가지고 논다. 예술가는 색과 공간을 가지고 놀고 음악가는 소리와 침묵을 가지고 놀며 에로스는 연인을 가지고 논다. 신은 우주를 가지고 놀며 아이들은 손에 잡히는 무엇이든 가지고 논다.

호모 사피엔스에서 호모 루덴스로
놀이는 원숭이나 유인원 같은 고등 포유류의 특징이다. 요한 호이징가(Johan Huizinga)는 <호모 루덴스 Homo Ludens>에서 인간의 놀이는 의례, 예술, 정치, 스포츠, 문명 등 삶의 전 영역에서 고도로 발전했다고 하면서, “하지만 놀이를 아는 것은 마음을 아는 것이다. 여기서 놀이의 종류가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라고 했다.
놀이는 언제나 맥락의 문제다. 무엇을 하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하는가가 핵심이다. 놀이는 정의될 수 없다. 놀이 안에서 모든 정의는 길을 잃고 춤을 추고 합쳐지거나 쪼개지기 때문이다. 놀이는 아주 장난스러울 수도, 극도로 엄숙할 수도 있다. 아무리 힘든 노동이라도 즐기는 마음으로 하면 이는 놀이다. 놀이를 통해 우리는 사람, 동물, 사물, 아이디어, 우리 자신과 새롭게 상호작용하는 방법을 발견한다. 놀이는 사회적 위계관계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공식적으로 동떨어진 요소들이 하나로 합쳐지기도 한다. 기발한 행동도 속출한다. 놀이를 통해 반응이 풍부해지고 유연한 적응력도 길러준다. 이는 놀이의 친화적인 가치이기도 하다. 현실을 재해석 하려고 새로운 시각을 얻음으로써 우리는 고정된 사고에서 벗어난다. 놀이는 자신의 능력을 재확인시키고 전례없는 방식으로 그 능력을 사용하도록 한다.
놀이는 게임과는 다르다. 놀이는 순수한 즐거움을 추구하고 행하는 것이다. 게임은 일정한 규칙하에 이루어지는 활동, 예를 들어 배구, 시 짓기, 교향악 연주, 외교 같은 것이다. 놀이는 태도이자 행동의 방식이지만 게임은 규칙과 참여자가 정해진 활동이다. 배구나 작곡 같은 게임도 놀이처럼 할 수는 있다. 물론 놀이가 아니라 고역, 출세를 위한 도박, 심지어는 복수로 행하는 것도 가능하다.
같은 행동이라도 일상적 맥락이 있을 수 있고, 놀이라는 특별한 맥락에 있을 수도 있다. 놀이 공간이 정해져 있을 때도 잦다. 하지만 마음이 자유롭다면 커다란 위험과 당면해서도 놀 수 있다. 그 특별한 맥락은 ‘이것이 놀이다’라는 메시지로 정해진다. 신나게 꼬리를 흔드는 개, 미소, 빛나는 눈빛, 극장 출입문, 연주회장의 불빛 등이 그런 메시지가 보내는 신호다.
인류학자들은 고등 생명체의 특징 중 하나로 ‘신나게 움직이기’를 든다. 신나게 움직이기는 어린 강아지나 고양이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순순한 놀이 에너지다. 신나게 움직이기의 예로는 걷는 대신 깡충깡충 뛰는 것, 지름길 대신 경치 좋은 길을 택하는 것, 이런저런 규칙이 많은 게임을 하는 것, 결과보다는 과정에 관심을 두는 것이 있다. 괜히 장애물을 만들어 그것을 극복하고 즐거워 하기도 한다. 이는 공등 동물과 인간에게 대단히 큰 진화적 가치를 가진다.

놀이에는 이유가 없다, 그 자체로 존재할 뿐
물질과 에너지로 이루어진 이 세상은 질서에서 무질서로 향하는 법이라고 한다. 하지만 삶에서는 정반대의 경향이 나타난다. 물질과 에너지가 진화라는 게임을 거쳐 점점 더 조직화된 유형들로 변모하는 것이다. 이러한 다양성 확산은 놀이 그 자체와 마찬가지로 스스로 에너지를 얻어 움직이며 스스로 풍부해진다.
창조성은 발견된 결과보다는 탐색 과정에 더 많이 존재한다. 우리는 열정적인 반복, 연습에서 즐거움을 얻는다. 놀이와 마찬가지로 이들 행동에도 나름의 목적이 있다. 하지만 핵심은 결과물이 아니라 과정이다. 놀이는 그 자체로 만족감을 주는 것이지 다른 무언가를 이루기 위한 조건이나 수단이 아니다. 놀이, 창조성, 예술, 자발성 등의 모든 경험은 그 자체로도 보상된다. 다른 보상이나 이익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 놀이는 막혀버린다.
놀이에는 이유가 없다. 그 자체로 존재할 뿐이다. 이집트를 탈출 할 때 모세와 신이 나눈 대화를 기억해보라. 모세는 그가 누구와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누구에게서 영감을 얻었는지 사람들이 물어오면 무어라 대답해야 할 지 물었다. 그러자 신은 “나느 나일 뿐이다” 라고 대답했다. 놀이도 마찬가지로 그저 놀이일 뿐이다.

“놀이, 마르지 않는 창조의 샘”(스티븐 나흐마노비치 지음, 에코의 서재)의 1부 ‘원천’ 중 “놀이 안에서 모든 정의는 길을 잃는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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